본문바로가기하위메뉴 바로가기
  • 전통정원 희원의 4계
  • 희원의 꽃과 나무
  • 정원 속의 석조물

HOME > 전통정원 희원 > 정원 속의 석조물

  • 마애산신상

    마애산신상(磨崖山神像) 위치 : 미술관 입구 부정형의 자연석에 얕은 부조로 양각한 산신상(山神像)입니다. 중앙에는 수염을 늘어뜨린 산신(山神)이 가부좌의 자세로 호랑이를 올라타고 있습니다. 또한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天人)이 대칭하여 위치하면서 신령스러운 모습을 더하고 있습니다. 호랑이는 산신 또는 산왕(山王)이라 하여 독립적인 신앙의 대상이자 경외의 대상이며, 야담·설화 등 구비문학이나 까치호랑이도 같은 그림에도 등장합니다. 조선시대의 절에는 산신(호랑이)을 모신 산신각(山神閣)이라는 독립된 전각이 있어 불교와 민속신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를 보여 줍니다.

  • 석조

    석조(石槽) 위치 : 주정 돌덩이의 내부를 파서 먹는 식수를 담거나 연꽃 같은 식물을 키우는데 사용하는 돌그릇을 석조 또는 수조(水槽)라고도 하며 크기가 작은 그릇은 물확이라고 부릅니다. 이 석조는 둥글고 균형이 잘 잡힌 형태에 둘레에는 물고기의 문양이 도안처럼 새겨져 있어 뒷 배경의 토담과도 잘 어우러집니다.

  • 석조당초 문광배

    석조당초문광배(石造唐草文光背) 위치 : 주정 좌불(坐佛)에 쓰였던 광배(光背)로 생각됩니다. 위가 뾰족하고 아래가 넓적한 배 모양(舟形) 광배입니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의 테두리 선을 경계로 하여 안쪽에 당초문(唐草文)과 바깥쪽에 화염문(火焰文)이 도드라지게 조각되었습니다. 활달하고 정교한 기술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삼층석탑

    삼층석탑(三層石塔) 위치 : 주정 기단부(基壇部), 탑신부(塔身部), 상륜부(相輪部)가 구비된 고려시대의 석탑입니다. 원래 기단 밑의 땅속에 있던 지대석(地臺石)이 지상으로 노출되어 있고, 새로 보강한 부재도 섞여있어, 원래의 석탑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탑신부는 기단 위에 놓여 있는 탑의 중심부인데, 지붕돌과 몸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몸돌이 놓이고 그 위에 지붕돌이 놓이는데, 지붕돌의 아래부분에는 네 층의 받침석이 가지런히 조각되어 있습니다.

  • 석등

    석등(石燈) 위치 : 주정 불교에서는 불을 피워 공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전에서는 촛불을 켜고, 밖에서는 석등에 불을 밝혀 공양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석등은 불을 밝히는 실용적인 의미와 함께 등불을 안치하는 공양구의 성격도 있습니다. 석등은 일반적으로 하대석(下臺石), 중대석(中臺石), 상대석(上臺石), 화사석(火舍石), 옥개석(屋蓋石)으로 구성됩니다.  이 석등은 하대석(下臺石)과 상대석(上臺石)이 여덟 잎의 연꽃모양이고 그 사이의 기둥인 간주(竿柱)는 팔각의 기둥모양이며, 화사석에는 불빛이 보이도록 화창(火窓)을 뚫고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하여 장식하였습니다.

  • 귀부

    귀부(龜趺) 위치 : 주정 석비(石碑)의 받침돌로 거북이 모양을 한 것을 귀부라 합니다. 석비는 받침대 격인 거북모양의 귀부와 비의 내용을 새긴 돌인 비신(碑身)그리고 비신의 위에 지붕처럼 덮은 이수로 이루어지며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신라의 태종무열왕비에 처음 나타납니다. 이 귀부는 강한 괴체감과 과장된 표현이 특징으로 전통적인 미감과는 다른 새로운 취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 석양

    석양(石羊) 위치 : 소원 석양은 분묘를 수호하는 석수(石獸)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선시대 국가의례를 기록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의하면 봉분을 둘러싸는 담장인 곡장(曲墻)의 안쪽에 석호(石虎)와 함께 석양이 설치됩니다. 석호(石虎)는 북쪽에 두 마리, 동서에 한 마리가 배치되고 석양은 동서에 석호를 사이에 두고 두 마리씩 배치하였습니다. 원래 석수의 네 다리 사이는 뚫려져 있지 않고 양쪽에 풀모양을 부조하여 두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 석양의 경우에는 옆면이 뚫려 있어 특이합니다. 다리를 약간 뒤로 뺀 엉거주춤한 자세, 웃음을 머금은 듯한 표정 등도 전형적인 석양과는 다른 점입니다.

  • 벅수

    벅수 위치 : 월대, 매림주변 벅수는 마을의 수호신이자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됩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장승과 기능과 신앙적 의미가 비슷하지만, 주로 돌로 제작되었으며 충청도 일부, 전라도 및 경상도 해안 지방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로 남녀 한 쌍으로 제작되며 머리와 몸체가 괴체감있게 조각됩니다. 세련된 표현은 아니지만 툭 불거진 눈망울, 뭉뚝한 코, 웃거나 삐죽내민 입술 등 수더분하고 어수룩하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민중들의 순후하고 질박한 심성이 그대로 투영되어 벅수 조각의 예술성을 보여줍니다.

  • 제주동자

    제주동자 위치 : 월대, 매림주변 제주동자는 제주지방의 묘제(墓制)석물로서 사자(死者)를 호위하고 시중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묘제 석물로서 일반적인 동자석과 비슷한 기능을 갖고 있으나, 제주도의 지리적 특성상 검은색 현무암으로 조각됩니다. 동그란 얼굴에 민머리 또는 댕기머리를 하고 있으며, 몸은 간략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제주동자는 두 손에 다양한 지물을 들고 있는 점이 특징인데 새, 붓, 숫가락, 창, 거울 등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의 내세에 대한 평안 또는 후손들의 안정과 축복을 발원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 석호

    석호(石虎) 위치 : 보화문 옆 분묘를 수호하는 석수 가운데 하나로, 봉분을 둘러싸는 담장인 곡장(曲墻)의 안쪽에 석양(石羊)과 함께 설치됩니다.  석양은 동쪽과 서쪽에 각각 두 마리 씩 두고, 석호(石虎)는 북쪽에 두 마리, 동서의 석양 사이에 각각 한 마리씩을 두는데 모두 밖을 향하게 합니다. 헤픈 듯이 웃는 장난기 넘친 얼굴이면서도 위엄이 서려 있고  꾸부정이 앉은 모습이 어리석어 보이나 푸근한 느낌을 줍니다. 커다란 몸집을 가지런히 수습하여 단정한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둥그렇게 웃음 짓는 입과 무언가 재미있는 광경을 보는 듯한 커다란 눈, 약간 숙인 머리에서 등으로 꼬리로 이어지는 굴곡진 선들은 서로 잘 어우러져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 문인석

    문인석 위치 : 석인의 길 문인석은 무덤을 수호하는 묘제 석물로서 문반(文班)의 관리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문인석은 조선시대에 활발히 제작되었는데 시기별로 그 차이가 있습니다. 조선 초기부터 15세기 후반에는 일반관리들의 공무복인 복두와 공복 그리고 홀을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일반적으로 '복두공복(僕頭公服)'형이라 부릅니다. 이후 16세기에는 복두공복의 문인상과 함께 조선시대 관리들이 왕의 조례에 착용하는 금관조복(金冠朝服)과 홀을 들고 있는 문인상이 나타나는데 16세기 후반에는 주로 제작되며 19세기 후반 무렵에는 복두공복과 금관조복의 문인석이 함께 조성되었습니다.

  • 무인석

    무인석 위치 : 석인의 길 문인석과 함께 무덤을 수호하는 석물인 무인석은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있는 무인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무인석은 단독으로 조성되는 경우는 드물고 문인석과 함께 조성되며 그 경우 문인석보다 한 단 아래쪽에 위치하게 됩니다. 조선시대의 무인석의 경우 대략 두 가지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16세기 전반기에는 포(袍)에 투구를 쓰고 귀면의 칼자루를 두 손으로 가지런히 모아 잡고 있는 형상으로 무인석 답지 않은 차분하고 점잖은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후 16세기 후반경에는 투구와 찰주갑옷을 입고 부리부리한 눈매에 수염을 늘어뜨린 전형적인 무인의 모습을 보입니다.

이전목록

 / 

다음목록